인생 뭐 있어

몇 해 전 티비 치킨 광고에서 서인영이
우리 인생이 훌랄라라고 했다.

시발 어찌나 불쾌하던지
마음 같아선 당장 닭다리를 빼앗아다
저년을 매우쳐라!

비슷한 맥락에서
술먹고 부라보 부라보하는 것도,
그게 아빠의 청춘이든 마이 라이프든
찻길 건너편에 있는 나까지 똥걸레로 보이게하는 것 같아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누가 부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부라보가 문제인 거다.
훌랄라도 싫고 부라보도 싫다.
근데 싫은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는 게

훌랄라든 부라보든 그게 인생을 덕지덕지
똥걸레처럼 보이게해서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인생' 이랍시고 얘기하는 게 못마땅한 것인지가 불명확하다.

엄마랑 <북촌 방향>을 봤는데 웃겼다.
올해 본 영화중 제일 많이 웃었으며, 보면서 시종일관 공감
근데 그래서 뒷맛은 나빴다. 훌랄라, 부라보랑 다를 게 없다.
인생이 똥걸레처럼 느껴진다. 나는 똥걸레판에서 살고 싶진 않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똥걸레가 아닌 고성능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점진적으로 나도 어엿한 인간이 되어서 이 사바세계가 똥걸레판만은 아님을 보이리 라고


친구랑은 팔자 얘기를 한다.
주로 옷가게에서 옷구경을 하다가 시덥잖게 그런 말을 꺼내는데,
내용인즉슨 우리가 손이 가는 옷은 거의가 뻔하다는 것이다.
"이 병신같은 옷 좀 봐." 하면서도 해필 그걸 갖고 싶어한다.
많은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마음에 안 찬다고 얘기하면서도 계속들 사귄다.
갈라서라고 하면 되려 화낸다. 아마 그런 게 팔자지 싶다.

밖에서 벌어지는 이벤트같은 게 아니라
싫다고 하면서도 등지지 못하는 것들

그런 의미에서....
다 써 놓은 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내 팔자



아, 그리고 똥걸레는 코알라님의 어휘를 빌려왔다

난 지금 데인져

안팎의 불확실성과 싸우고 있다. 남들은 시시하고 나는 더 시시하도다.

찾아간 학원에서는 아직 연일 자기소개중인데
'자신의 매력을 설명하는 일분 삼십초 분량의 스피치' 따위의 과제를 내준다.
덕분에 내 뒤에 뒤에 옆에 앉은 사람이 미친 존재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내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시크한 카리스마를 지녔음과 동시에 자세히보면 순박할 뿐더러, 요리 운동 노래 등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인 것도 모자라 카톡에 불까지 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웃는다. 비웃는다.
시시하다곤 제낀다.

근데 배낭을 챙겨 메고는 목이 메인다. 내가 더 시시해서.
모든 게 싫다고 말하는 못생긴 내 얼굴 따위는 가을 외투로 가리면 그만이겠긔

근데 옘병할 날씨는 아직도 왜 이리 덥간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쇼핑하듯이 살아온 게 잘못이다.
이 집 옷이 맘에 안 들면 저 집 가 사자는 식으로 살았다.
사실은 주머니가 비었으면서 점원 싸가지 욕하는 격............

이런 회한?까지 겹쳐서 모든 게 나의 내장을 뭉근하게 졸여오는데
다만 이 모든 문제를 쉽게 등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빛나는 시간은 오직 두 가지,
섬사람과의 통화와(♥)
친구들과의 음주와 가무와 수면과 해장과 멘붕의 시간
내일은 친구들이 놀러 온다. 엄마랑 메뉴와 예산을 짠다.
초등학교 때 생일파티가 생각나는데,
울엄마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를 사랑해준다는 게 눈물이 난다.
자식새끼들의 면면이 그저그런데도.
그러면서 엄마는 나와 동생을 8:2의 비율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 친구는 우리 할아버지의 기호를 물으며, 단 것이라도 사올 의사를 밝혔지만
엄마는 정색하면서 하나라도 가져오면 혼낸다고 전하란다.
아, 친구의 번거로움을 걱정하는 건 아닌 듯 하다.

새삼 나는 도대체 뭘까 생각하면서 밥솥을 벅벅 닦았다.
티 없는 꼬마 철학자 돋긔?ㅋㅋㅋ


우리집은 누굴 초대하기엔 아직 너무 더럽다.
시발초파리새끼들은 그렇게 사리분별이 안 되나?산사람 콧구녕엔 왜 자꾸 들어오고 난리

경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답사를 다녀왔다. 좋았다. 좋았는데
경주라 좋았던 건 아니고.
답사는 원래 좋은 거고, 서울은 벗어나면 장땡.

씹을거리의 고갈에 대한 염려없이, 근 3일 동안 이즈미와 신명나게 털다 왔다.
교수님이니 행인이니 가릴 것 없이 사방천지에 있는 것은 모두 맛을 보았다.
맛 보면서, 우리가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 이것 뿐이니 이것으로 뭔가 돈이 될만한 일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그런 돈벌이가 있을지 알 수 없고, 우리가 프로 꾼이 될만큼 재주가 있는지도 확실치가 않았다.

시골볕을 보니 사철 발 벗고 이삭이나 주워볼까 싶기도 해서,
그저 들판 어디로 시집와서 두나절이고 세나절이고 막걸리만 먹다가
남편 리어카에 실려 들어와서 소박이나 맞아볼까 하면서 좋다고 웃었다.
그러다 건넛집 인도댁한테 데바나가리나 배워보자고 하면서 또 좋다고 웃었다.

잔칫날 술 먹고 재실같은 거나 태워볼꺼나.
그치만 나에겐 미남 도시 남친이 있으므로 패스


대릉원은 평화롭고 무성의했다.
천마총에 들어갔다. 교과서에서 봤던 저 유명한 천마도
찜질방 수면실 누비 비닐떼기 같은 거에 빗바랜 물감이 간신히 말라 붙어있었다.

불국사 관광객은 좀 막무가내였다. 저들 사진 찍는다고 야야 비켜
유모차 끌고 나온 가족단위부터, 학생들, 정체모를 여러 단체들
그리고 할매 할배들

뒤에서 어떤 할매가 그랬다.
남자들이 자기 좋다고 정신 못 차린다고.
할배는 그게 다 시커먼 속셈이 있어서 그런 거니 곧이 듣지 말라고,
굳이 할매에게는 하지 않아도 될 충고를 했다. 또 할매는 그런 건 몰랐다는 듯이
그렇냐그렇냐 맞장구를 치면서 우리를 추월

할매 옷이 빨갰다가 파랬다가 좀 그런 것이,
그리고 이런 저런 말하는 양이
부부라기보다는 초등동창생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어쩐지 할배 역시 호텔로 돌아가 동창생을 맛있게 잡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주 시내에는 두 집 걸러 한 집이 찰보리빵 가게였는데

찰보리빵 발명가의 집
찰보리빵 3대 원조 집
찰보리빵 50년 만든 집
찰보리 찰보리 난리난리

그래도 맛은 참 있어서 한 개에 천원이라도 아깝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나와 이즈미가 휴게소에서 산 빵은 부산모처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즈미는 그걸 과외집 어머니에게 드린다나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는 마음이 헛헛하더니
서울이 가까워오자 꽉 맥혔다.
경주네 뭐네 바람만 들어서는.



미봉책

아빠가 하재민을 데리고 몇 시까지 어느 호텔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마 누군가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나는 분명 하재민을 차려 입히고 제시간에 출발을 했는데, 택시를 잡아 탔을 때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그리고 택시가 우리를 호텔 앞에 내려준 것은 다음 날 아침.

기겁을 해서 뛰어들어 간 식장 안에는 다른 커플이 행진을 하고 있었고
아빠는 이미 집에 돌아간 후였다.
내가 집에 왔을 때 아빠는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그냥 나를 행인이 뿌려놓은 토 보듯이 했는데

여기까지는 내가 꾼 꿈.

제 때 도착하지 못했던 건 아마 상황 탓이 반, 내 탓이 반이었던 것 같다.
악당들이 있기는 있었고, 꿈 속 길이 너무 복잡하기도 했지만
악당들을 물리치고 바로 택시를 잡은 게 아니라 어디서 퍼질러 앉아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도 억울하지는 않고, 그냥 잘못 했구나 싶기만 했다.
아아, 늦었구나. 또


요즘 나는 여러 중장년 남성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누가누가 이상적인 아버지일까를 점쳐보는데
최근에 본 가장 푸근한 남성의 얼굴은 김효명 교수님의 영정 사진이었다.

추도사를 낭독한 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아 고인이 신사였다고 칭송했다.

"앞에 나서는 법이 없이 항상 말을 아끼셨다."
"학부생들의 고민까지 들어주셨다." 그런 이야기였는데

아무리 추도사라도 어이 없는 공치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귀로는 원불교 스님들이 중얼중얼 외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영정 사진의 백발을 훑으면서
아아, 이 얼마나 따뜻한 아버지의 얼굴인가  하고 감동을 하다가
곧 신사와 따뜻한 아버지는 별개의 문제임을 깨닫고
이런 식의 큰 바위 얼굴 찾기는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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